6.522 실로 언표할 수 없는 것이 있다. 이것은 스스로 드러난다, 그것이 신비스러운 것이다.
저는 기억력이 좋지 않습니다. 제가 기억을 못 했던 예를 구체적으로 나열해드리고 싶지만 그조차 기억나지 않습니다. 누군가와의 대화들도, 폭력, 채무도 자고 일어나면 사라져 버립니다. 머릿속에는 추상만이 남아있습니다. 어릴 때엔, 기억도 하지 못할 지금을 왜 살고 있는 걸까, 눈을 뜨면 행복한 미래로 바로 가 있으면 좋을 텐데, 그런 생각을 하며 잤었습니다. 그나저나 언젠가 했던 생각들은 잘 지워지지 않는 것 같네요. 문제는, 생각은 전혀 구체가 아니라는 점에 있는 것이지만요.
2016년 8월 28일에 저는 블로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. “질문: 평생 잊고 싶지 않은 기억은? / 답변: 이리야와의 첫만남” 2016년은 제가 이리야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해였습니다. 그렇기에 첫 만남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네요. 지금은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만.
이런 망각도 기억력이 좋지 않아 일어나는 슬픈 일입니다. 그러나 저는 소중한 일들을 잊는 것은 견딜 수 있습니다.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만남을 잊어버린 것은 아프지만, 이리야와는 언제 어디서나, 지금 당장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요. 제가 진심으로 참을 수 없는 건, 말해질 새도 없이 떠나버린 x들입니다. 누구도 그들에 대해 말할 수 없고 말하려는 시도조차 않지만, 하나하나가 『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』보다 길고, 『봄과 수라』보다 아름다운 환상일 것입니다.
그것은 구름, 나무, 파도입니다. 사람들은 구름을 보며 자신이 구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. 그러나 그들은 구름을 보면서도 상상 속 물고기나 상상 속 강아지라던가 심지어는 UFO에 대한 이야기를 할 뿐이지 구름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습니다. 나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. 사람들은 나무에 새겨진 균열의 모양이나 가지의 갈라짐을 다른 개념에 은유하며 나무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. 그러나 그것은 전혀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. 파도의 경우, 상황은 더 심각합니다. 파도에 의한 배의 흔들림에 대해 이야기하거나, 심하면 바다만 바라볼 뿐이고 파도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.
그 누구도 구름, 나무, 파도에 대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. 그러나 그것들은 그곳에 있으며 심지어 우리에게 보여집니다. 그럼에도 저는 구름 하나 나무 하나 파도 하나에 이름을 지어줄 수 없습니다. 제가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감탄사뿐입니다. 이 기억력의 무능력함을 저는 진심으로 참을 수 없는 것입니다.
만일 저의 기억력이 충분히 좋아지는 날이 온다면, 만일 그리 된다면, 백석의 시 한 수 대신 구름 한 점을 읽고, 어제 읽은 질베르 시몽동 대신 어제 만난 나무 한 그루를 인용하며, 「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」 대신 부안군 위도의 잔잔한 파도를 한없이 바라볼 셈입니다.